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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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도서관에서 빌림. 3주동안 다 못읽고, 다시빌려서 2일 만에 마무리 했다. |
고미숙이 사랑하는 고전들-- 한 번 읽어 보고프다.
임꺾정 - 길위의 청춘, 에로스의 향연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은 하나다!
열하일기 - 길은 '사이'에 있다.
아Q정전 - 결코 끝나지 않는 질문들
홍루몽 -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러브스토리'
서유기 - 구법과 모험의 유쾌한 환타지
돈키호테 - '맨 오브 라만차'(돈키호테)가 방랑을 나선 까닭은?
픽션들 - '헤테로토피아'혹은 타자들의 향연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고미숙님의 좋아하는 숫자(3-陽木, 8-陰木)
21C의 화두는 <몸>이다.
1장 몸VS몸
2장 몸과 여성
3장 몸과 사랑
4장 몸과 가족
5장 몸과 교육
6장 몸과 정치·사회
7장 몸과 경제
8장 몸과 운명
디지털 혁명은 몸의 소외와 생명력의 박탈을 요구한다.
앎은 곧 주권이자 평등의 원천이다.
진정 타인과 소통을 원한다면 기운의 배치를 활발하고 여유있게 바꿔야 한다.
양생은 병을 막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원기를 자양한다.
아파야 산다, 아픔을 통해서만이 삶의 새로운 질서가 창조된다.
아는 만큼 자유롭고, 아는 만큼 살아낸다. 고로, 앎과 자유, 건강과 지혜는 하나다.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則不痛 不通則痛)-자연과 생명은 오직 '순환과 운동'이 있을 뿐이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만 거두어 들일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 같은 것이라네(키케로,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유머없는 세상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다.
우리 시대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남성의 미적 잠재력의 폭발로 요약될수 있겠다.
남들은 나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다.
남성-과잉행동장애(ADHD), 공황장애 → 상품은 생명의 리듬을 소외시키고, 서비스는 의전적으로 만듦
여성- 성조숙증, 조기폐경 ↗
사랑이 삶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사랑을 구현하는 것이다.
가족이 '타자의 공동체'가 되려면 우정과 신의라는 가치의 복원이 절실하다.
결단과 용기의 저력은 지성이다.
과거는 지나갔고, 매래는 오지 않는다. 인간은 어차피 현재를 살 수 밖에 없다. 지금, 여기.
희망은 허망하다, 절망이 그러한 것처럼, 왜냐하면 희망과 절망, 좌절과 도피는 모두 망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타인의 욕망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홀로 설 수 있는 자 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남산강학원(www.kungfus.net)&감이당]-->고미숙 작가의 공동체--->경험해 보고 싶다.
가족과 혈연의 틀을 넘어 '세대 공감의 네트워크'를 열어가는 최고의 대안은 공부이다.
결국 꿈은 생명의 활동이 아니라 자본의 명령일 뿐이다.
교육의 핵심은 '몸의 능동성'에 있다.
성공한 스타를 자식으로 두고싶은 부모 자신의 욕망이 아닌가?
지금 필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의 용법이다.
양생의 수련에는 사회적 윤리를 닦는 '수양'과 생사의 관문을 넘는 '수행'이 수반되어야 한다.
p160의 도서관에서 책은 읽은 사람들이 스스로 정리하는게 하닌가 공간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윤리적수준은
이토록 초라하다니 ▶도서관에서는 읽은 책은 반납하는 트레이에 놓아두면 됩니다. 아이들이 다시 꽃거나 정
리를 하면 책을 찾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친환경이건 디지털이건 모든 공간은 사람과 접속해야 한다. 접속이 곧 공간의 생명력이다.
리더쉽과 자기 배려는 함께 간다.
처음 시작할 때는 열적이든 분노든 안으로 응축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생략해
버린다.
인생과 우주의 원칙은 간단하다.-리듬을 타고 강밀도(intensity)를 높여라!
철학을 하고 사유를 해야만 비로소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평생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하고 섹스와 번식 이외에 어떤 삶의 기쁨도 누릴 수 없었던 노예의 삶(정규직)이
그토록 그립단 말인가?